지난 포스팅에서 원의 부마국이 된 고려는 원의 간섭을 받는다고 했었죠?
이후에 원의 간섭이 계속 되면서 친원적 성향을 가진 권문세족이 대두하였습니다.
권문세족은 기존 문벌 귀족에 무신 그리고 원의 세력을 배경으로 성장한 가문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권문세족의 토지 제도와 수취제도의 폐단을 개혁하려 했던 충선왕은 결국 실패하였으나 14세기 중엽 한족의 반란으로 원의 쇠퇴가 시작하였고 이를 틈타 공민왕은 적극적인 반원 자주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자신을 따르던 신돈을 앞세워 권문세족과 친원 세력을 견제합니다.
또한 폐지되었던 과거제와 성균관을 정비하였고, 신진사대부를 적극 등용하게 됩니다. 아울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합니다. 전민변정도감이란 권신들의 토지점탈로 농민들이 노비로 전략하는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 설치한 개혁기관입니다.
이에 따라 권문세족은 반발을 했지만 백성들은 환호하게 됩니다. 당시 파격적인 대우를 받던 신돈은 결국 권력의 맛에 빠지게 되고 결국 신돈은 역모를 꾀하다 발각되고 처형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공민왕 또한 시해 당하게 되며 개혁은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공민왕의 개혁은 신진사대부와 신흥 무인 세력의 성장에 밑거름이 됩니다.
신진사대부의 경우 지방 향리 자제로 무신 집권기 이후 과거 시험을 통해 관리로 진출하고, 공민왕때 개혁정치에 힘을 입어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력의 미약으로 개혁에는 역부족합니다.
14세기 이후 홍건적과 왜구의 격퇴 과정에서 최영과 이성계와 같은 신흥 무인세력들이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이후 요동 정벌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성계와 최영의 입장 차가 발생하게 되며 이성계는 결국 요동 정벌을 가는 와중 위화도에서 회군을 해 최영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조선건국에 있어 급진파 사대부 세력과 연합을 하게 되고 (정도전) 정몽주등 온건파 세력은 제거하게 되며 결국 조선을 건국하게 됩니다.
네 다음 포스팅에서는 본격적으로 조선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사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사 정리 - 고려 대외 관계와 고려 후기 정치 변화 (0) | 2019.08.08 |
---|---|
한국사 정리 - 문벌 귀족 사회와 무신 정권 (0) | 2019.08.08 |
한국사 정리 - 고려의 건국과 귀족 사회의 발전 (0) | 2019.08.08 |
한국사 정리 - 초기 여러나라 정치 경제 사회풍습 제천행사 정리 (0) | 2019.07.26 |
한국사 정리 - 옥저 동예 그리고 삼한의 성장과 사회모습 (0) | 2019.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