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은 동예와 옥저 그리고 삼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동예와 옥저는 함경도 및 강원도 북부에 위치해 있었으며, 고구려의 압박으로 인해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옥저는 소금과 어물등 해산물이 풍부하였고 토지가 기름져 농사가 잘되었다. 하지만 고구려에 소금, 어물 등을 공납으로 바쳤다.
옥저는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부여족의 한 갈래였으나, 풍속이 다르고 며느리가 될 어린아이를 대려와 성장할 때까지 키운 후 신부 집에 예물을 주고 혼인시키는 며느리제가 있었다. 그리고 가족 공동 무덤인 목관에 안치하는 골장제 풍습이 있었다.
동예 또한 토지가 비옥하고 해산물이 풍부햇다. 특히 동예는 명주와 삼베를 짜는 방직 기술이 발달했다. 특산물로는 단궁과 과하마, 반어피등이 유명했으며, 동예에서는 10월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또한 족외혼을 엄격하게 지켰으며, 각 부족의 영역을 침범하면 책화라 하여 노비와 소, 말로 변상하게 했다.
삼한의 경우 고조선의 남쪽에 위치해 진나라부터 시작하여 고조선이 멸망한 뒤 철기 문화를 지닌 유이민이 대거 남하하면서 진의 토착세력과 결합해 한반도 남부에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형성되었다. 삼한중 마한은 54개, 진한과 변한은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져있으며, 마한의 소국중 하나인 목지국의 지배자가 삼한 전체를 이끌었다.
삼한은 정치적 지배자와 별개로 제사장인 천군이 있었다. 그리고 신성지역으로 소도가 있었으며, 천군은 농경과 종교에 대한 의례를 주관하였다. 소도는 군장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범죄자가 도망가도 잡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제정의 분리를 엿볼 수 잇다.
소국의 일반 사람들은 읍락에 살며 농업과 수공업의 생산을 했으며, 두레와 같은 조직을 통해 여러가지 공동 작업을 하였다.
또한 해마다 씨를 뿌리고 5월과 가을곡식을 거두는 10월에 계절제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삼한 중 변한은 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과 왜 등에 수출했으며, 교역에서 철을 화폐처럼 사용했다.
이후 철기시대 후기의 문화발전을 통해 삼한사회의 변동으로한강 유역에서는 백제국이 성장하며 마한지역을 통합했고, 낙동강 유역에서는 구야국, 동쪽은 사로국이 성장해 각각 가야 연맹체와 신라의 기틀을 다져나가게 된다.
여기까지 옥저 동예 삼한에 대한 내용이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초기 여러나라들에 대한 간단한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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