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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공부

붕당의 시작. (동서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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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과 서인 - 선조 초기 이황 죽고 조식도 죽고, 스승없이 제자들만 남게 됨 

이조전랑이라는 관직이 있음. (관리 임명권이 있음) 김효원과 심의겸이 이 자리를 두고 다툼.

김효원은 동인, 심의겸은 서쪽에 살아서 동인 서인이라고 함. 

이황과 조식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동인들이 쪽수가 많아 우세에 있었고, 관동별곡, 사미인곡으로 유명한 정철 등이

서인으로 수적으로 열세에 있었음. 심의겸 (ㅅ)로 기억하길. 

 

이이의 등작 (이율곡) , 독학파. 서인과 동인의 싸움에서 이이는 화해와 평화를 조율. 

훗날 이이가 서인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이황의 제자들이 중심인 동인, 남인들과 어울릴 수 없어서임.

이이는 십만양병설 주장, 성학집요, 동호문답, 격몽요결 등을 저술.  이이가 죽자 동인과 서인이 분열함.

 

정여립 모반 사건. - 정여립이란 사람은 전주출신으로 이이의 제자며, 서인이었음.

경연자리에서 이이를 비판하면서 서인들의 손가락질을 받음

그래서 나중에 동인으로 갈아탐...

대동계라는 계모임 만들고, 왜구 쳐들어오자 왜구도 물리치면서 명성을 떨치지만 모반사건에 연류되 자살함.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동인들은 대규모 숙청을 당함. -> 기축옥사!

 

기축옥사  - 정철의 기축옥사지만 따지면 선조의 기축옥사임. 

기축년 감옥에서 일어난 일로 해석 가능함

정여립의 모반사건으로 선조는 서인인 정철을 시켜 사건을 확인하고 벌주라 함. 

동인은 약 3년동안 천명에 달함.. 동인의 핵심인물만 남기고(유성룡, 이산해 등)다 죽음 .

 

정철 건저 사건

기축옥사가 끝나고 세자 책봉하자고 얘기하지만 선조는 괘씸해서 정철을 파직시키고 유배보냄.

 

남인과 북인 - 정철의 벌줘야된다는 문제에 대해 적당히와 세게 벌줘야 한다 두파로 나뉨.

유성룡, 김성일은 적당히 주자고 하고 (남인), 조식의 제자 정인홍, 이산해등은 세게 벌줘야 한다고 함(북인)

북인 정인홍에 의해 유성룡이 탄핵되고 북인들의 세상이 되고 북인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광해군이 다음왕이 되고, 

광해군때는 북인이 득세함 ... 광해군 말기에는 인조반정으로 서인 세상이 되고 북인은 사라지고, 

조용이 있던 남인은 서인과 붕당정치를 이어감. 

선조때는 남인과 북인만 기억하면 됨

 

이탕개의 난(여진) - 여진족 이탕개가 군사 3만을 끌고 조선에 침략.

삼포왜란과 더불어 가장 큰 전란.

이를 통해 북방쪽에도 제승방략체제 도입 -> 임진왜란 초기 못막은 이유.

 

성학십도 성학집요 - 두대가 헷갈리는데 이황 이이 의 이기론 주리론 주기론도 비슷함..

 

성학십도 - 이황 임금이 성군을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군왕의 도를 그림으로 도식화 함

성학집요 - 이이  임금이 갖춰야 할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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